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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대학신문] 인간에게 희망을 전하는 작가의 더 넓은 세계로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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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소설가 이금이를 만나다

유작(遺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유작이 내 전작을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소설가가 있다. 1984년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새벗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다. 아동 문학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 그는 『유진과 유진』을 시작으로 『알로하, 나의 엄마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등 여러 편의 청소년 소설을 남기며 청소년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11일(목) 약수역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글처럼 살고 싶다는 이금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 사는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일

이금이 작가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와 함께 자랐다. 이야기꾼 할머니와 함께 살며 각종 동화책을 읽고 세계 명작들을 섭렵했다. 그에게는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고, 당연히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을 쓰는 것이기에, 이야기를 쓰면서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나라는 존재를 거듭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글을 계속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돼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는 “인물을 그릴 때 인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라며 “선과 악을 모두 지닌 다층적 존재인 인간, 그런 인간이 가야 할 길과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작가는 자신의 삶 속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 작가는 “내 삶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사는 가운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라면서도 “반대로 글에서 실제로는 될 수 없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물가에 있어 보마 깨진 얼음장이 흘러가다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제.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가 얼음장이 곧추설 땐 기라. 그때 햇빛이 반사돼가 빛나는 긴데 그 빛이 을매나 이쁜지 모린다. 얼음장이 그런 빛을 낼라 카믄 일단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기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싶다.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나. 사는 기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마 그제사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다.

- 『얼음이 빛나는 순간』 중에서

 

이 작가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희망’을 얘기한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일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다독인다. 다소 뻔할지라도 희망을 계속해서 얘기하는 이유는 독자와 관련 있다. 그는 “소설에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1차 독자는 청소년이나 어린이로 하고 싶다”라며 “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구석이 있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밝혔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코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과 나의 엄마들이 있으니까.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중에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이자 그가 생각하는 아동·청소년 문학의 지향점이다. 이 작가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모두가 우울해하고 청년 실업, 아동학대 등의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도 아동·청소년 문학은 희망을 찾아낸다”라고 말했다. 현실이 각박하면 어두운 드라마보다 밝은 드라마가 보고 싶은 것처럼, 지금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화의 희망차고 따뜻한 메시지일지 모른다. 비록 동화가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상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독자에게 동화가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세상을 버티는 여성들

이금이 작가의 작품에는 여성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저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독자들은 상처로 아파하는 『유진과 유진』 속 ‘유진’에게 공감하고 씩씩하고 진취적인 『알로하, 나의 엄마들』 속 ‘홍주’를 보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그래.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걸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들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들지는 자기한테 달린 것 같아.

- 『유진과 유진』 중에서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통해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는 작품을 썼던 그가 인물에 변화를 주게 된 배경에는 그의 딸이 있었다. 그의 딸은 어린시절부터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아이였다. 이 작가는 딸이 6살 때 ‘여전사’라는 단어를 보고 “엄마, 왜 남자한테는 그냥 전사라고 하는데 여자한테는 여전사라고 해?”라고 물은 것을 회고했다. 어른이 된 딸이 자신이 겪어온 여성으로서의 삶을 들려줬을 때 이 작가는 깨달았다. 그는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의 여성에게는 순종, 인내 등의 가치가 요구됐다”라며 “엄격한 사회의 틀에 맞는 삶을 살았지만 그 현실이 내 성격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살아온 배경을 딸에게 잣대로 삼았던 것 같다”라며 “딸은 그저 온전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조차도 사회나 가정에서 유별나다며 억제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전했다.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이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인식을 깨부수고 변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추구하는 여성 인물들은 비록 엄청난 사회적 성공을 이뤄내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산다.

어머니의 삶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한순간도 없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딸인 버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시집가 버리면 그만일 딸들은 부모와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포와에선 결혼한 여자들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포와는 낙원이었다.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중에서

 

어미는 누더기나 다름없는 포대기에 감싸인 딸을 보았다. 아직 미끈미끈하고 하얀 태내 기름이 쭈글쭈글한 몸을 뒤덮은 빨갛고 작은 생명에게 묘한 슬픔을 느꼈다. 또 딸이라서만은 아니었다. 아이의 운명이 위의 딸들과는 다른 길로 갈 것이라는, 엄마의 영향력 밖에서 환히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예감때문이었다.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중에서

 

이 작가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속 수남이는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종류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자기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한발 한발 부딪히면서 싸워 이긴 것도 아니지만, 그냥 버티고 견디면서 자기 삶을 걸어갔다”라며 “그 자체만으로 너무 훌륭한 일이고, 성공이라 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여성의 삶도 녹록지 않은데 그 당시였던 100년 전에는 어땠겠는가. 그때를 살아간 수남이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 여성에게도 작가는 자기 삶을 버티고 견디면서 살아낸 것 자체가 훌륭하다고 말해준다.

 

무한한 장르적 도전

아동 문학으로 등단한 이금이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청소년 문학, 그리고 역사 장편 소설로까지 지평을 넓혔다. 본래 사춘기 아이들 이야기를 좋아했던 이 작가는 1990년대 당시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없던 출판환경에서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자고 다짐했다. 저학년 동화를 쓸 때 제약됐던 표현들은 청소년 소설을 쓰며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는 “하고 싶은 묘사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이야기도 깊이 있게 전개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청소년 소설이 막 쏟아져 나올 때에는 당시 청소년의 모습과 현실을 그려야 한다는 당면 과제가 있었다. 따라서 소설 속 배경이 집-학교-학원으로 한정적이었다. 그는 “작가는 자기가 설정한 배경 안에서 살아야 하기에 반복적인 배경이 점점 갑갑하게 느껴졌다”라며 “마음 속으로 넓은 세상을 다니는 여성 인물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넓은 세상을 다니는 그 인물이 일제강점기를 살도록 설정함으로써 자연스레 역사 장편 소설을 쓰게 됐다”라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공간을 그린다는 것은 내게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어떤 소재를 다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작가는 1940년대 사할린을 배경으로 한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이 한반도를 벗어나는 것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유학이나 여행이 아닌 힘겨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거대한 역사 속을 살다 이름 한 줄 못 남기고 쓰러져 간 미시적인 여성의 삶을 복원하고 싶었다”라며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이 작가는 자신이 선호하는 라틴문학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언젠가는 꼭 표현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판타지 장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분명히 나뉘어 있고 어떤 통로를 통해 둘을 오고 가는데, 마술적 리얼리즘에서는 환상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져 매우 흥미롭다”라며 “내가 살아온 세대가 판타지나 환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그들을 위한 이야기를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금이 작가는 소설가의 꿈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문학은 우리 삶 속의 진실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 자신을 질료로 삼아 쓰는 문학에서 실패나 실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이들은 진실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며 “실패나 실수 속에서 때로는 좋은 글감을 발견할 수 있기에, 청년들이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스스로를 ‘마음속에 쓰고 싶은 게 생긴다면 꼭 써내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는 작가 이금이는 오늘도 끊임없이 구상하고 글을 쓴다. 전작보다 발전된 모습을 위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금이 작가의 행보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고국을 떠난 사람·집단을 일컫는다.

 

사진: 장재원 기자 jaewon0620@snu.ac.kr

출처 : 대학신문(http://www.sn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