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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BookDB] "아동청소년소설, 훈계 없는 감동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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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부 이상 판매된 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 3부작이 <숨은 길 찾기>로 완결됐다. 1999년 <너도 하늘말나리야>, 2010년 <소희의 방>에 이어 15년 만에 마무리된, 곰삭은 이야기들이다. 10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달밭마을의 세 아이들 소희, 미르, 바우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됐다. 할머니 밑에서 나이보다 조숙한 모범생으로 자라온 소희는 서울 친엄마와 살게 됐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달밭마을로 내려온 미르는 사춘기를 맡는다. 선택적함구증을 겪었던 바우는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혼란을 느낀다.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좀 더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펼쳐진다.

15년 전, ‘동화’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심리묘사를 시도한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부 발췌가 되고 어른도 함께 읽는 동화로 롱런 중이다. 이금이 작가가 실제 아이들을 성장시키면서 얻은 또 다른 시각은 <소희의 방>과 <숨은 길 찾기>에 반영됐다. 어른이 읽어도 결코 유치하지 않은 심리묘사와 이야기 전개가 청소년 소설 작가 이금이의 특징이다. 날것으로 드러난 교훈보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지길 바라는 그녀의 욕심은 <숨은 길 찾기>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Q <너도 하늘말나리야> 이후 15년 만에 3부작을 완결했습니다. 소희, 미르, 바우 세 아이들의 후속 이야기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낼 때는 후속작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달밭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소희는 작은집으로 떠나고 미르, 바우는 남으면서 끝이 나거든요. 시간은 흘러가고 이 아이들의 시간과 세상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독자들이 세 아이들의 뒷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거예요. 특히 소희에 대해 많이 궁금해들 하셨고, 시간이 지나니 저도 쓰고 싶어졌죠.


Q 2010년 <소희의 방>으로 작은집으로 떠난 소희에 대해 먼저 그리셨는데요.

2004년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쓰고 제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자꾸 소희가 마음에 걸렸어요.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너무 어른스러운 모범생의 틀 안에 이 아이를 가둔 게 아닌가. 내가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저도 그 땐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소희한테 모범생인 걸 강요했던 거죠.


Q 그런 생각을 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 딸이 굉장히 조숙한 편이에요. 초등학교 2~3학년 때도 어른스러워서 젊은 여선생님에게는 제 딸과 친구처럼 대화가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시엔 되게 뿌듯했고 칭찬처럼 받아들였던 거예요(웃음). 고학년이 되고 청소년이 되니까 아이가 친구가 없는 거예요. 얘 눈에는 애들이 유치하고 어려 보였던 거죠. 늘 외로워 했어요. 그걸 옆에서 보는 저도 걱정이 많았죠. 다른 엄마들에게 연예인 공개방송 쫓아 다니는 딸 때문에 속상하단 이야기를 들으면 차라리 저는 그게 부러웠어요. 그걸 경험하면서, 아이는 제 나이다운 게 가장 좋은 걸 알았어요. 제가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소희를 그렇게 어른스럽게 그려놨잖아요. 자기 나이를 찾아주자. 나중에 만난 친엄마와 갈등도 하고 말썽도 피우고 연예인도 쫓아가는.

 



 


Q 시간이 흐르니 작가의 생각도, 마음에도 변화가 오는군요.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쓸 때는 저도 30대 후반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30~40살이 되면 인간으로서도 완성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미르 엄마, 바우 아빠, 소희 할머니를 굉장히 완성된 존재로 그렸어요. 나중엔 나이를 먹어도 인간으로서 완성은 힘들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웃음). 후속작에서 오히려 아이들은 성장을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그들 역시 미숙한 인간임을 숨기지 않죠. 인물들이 좀 더 입체적이 됐습니다. 제 시야가 넓어진 게 작품에 반영이 돼서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보답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숨은 길 찾기>는 미르, 바우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좀 더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리셨는데요. 특히 염두한 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농촌 청소년의 이야기를 써보자. 우리나라는 도시 중심도 아닌 서울 중심이잖아요. 제가 시골에 살아봐서 알거든요. 뭔가 남겨졌다는, 도시로 나갈 능력이든, 여력이 안돼서 남겨졌다는 열패감이 있어요. 농촌에 있는 미르와 바우에 대해 그리고 싶었어요. 미르는 지금까지 캐릭터상 그곳을 떠나고 싶어할 거예요. 바우를 그렇지 않을 것 같았고요. 두 번째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하면 처음으로 진로를 결정할 나이잖아요. 진로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Q 소설의 첫부분은 3년만에 세 아이들이 서울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이 작품을 구성할 때 제일 처음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무조건 셋이 3년만에 만나는 장면으로 가자. 그런데 환경이 확 달라진 세 명이 만났을 때 어떨까. 시골 아이였던 소희가 도시 아이가 됐고, 도시 아이였던 미르가 시골 아이가 된 거죠. 미르는 달밭마을을 떠나고 싶어하는 아이인데 옛날에 자기보다 집도 가난하고 모든 게 뒤쳐졌던 친구가 달라진 모습으로 앞에 섰을 때 어떤 마음일까. 미르가 소희에게 충동적으로 뮤지컬 배우가 될 거라고 거짓말 하는 장면도 구상할 때부터 떠올랐죠.


Q 미르는 셋 중 가장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보통 아이에요. 그 아이의 마음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가게 그려져 있는데, 모델이 있었나요?

모델은 딱히 없어요. 미르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에요. 이런 모델이 있어서 투영한 게 아니라 제가 미르라고 생각하고 써나가요. 과연 갑자기 부자가 된 친구를 만났을 때 얼마나 복잡한 마음이 들까. 부럽기만 할까요, 배만 아프기만 할까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 치잖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심리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그리는 게 어렵죠.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다 꺼내 놓으면 생동감이 넘칠텐데 30년째 하고 있어도 여전히 어려워요.
 






Q 아동/청소년이라는 한계를 어떻게 넘으시죠? 성인의 입장에서도 지루하거나 유치하지 않는 비결은 뭔가요.

동화나 청소년 소설이나 성인도 본다는 전제 하에 써요. 심리 묘사도 깊이 들어가죠. 주제와 교훈도 중요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재미에요. 심지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그냥 재미있어 하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이 어른들 못지 않게 사는 게 힘들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교훈을 강조하는듯한 이야기는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요. 그냥 제 소설을 읽고 친구와 수다 떤 것처럼 마음을 알아준 것 같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떤 걸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어요. 그런데 주제와 교훈이 날것으로 드러나거나 작가가 뭔가 훈계하는 것 같은, 내 작품이 그런 작품이 되는 게 싫어요. 문학은 또 하나의 오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Q 초등학교 교과서에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포함한 여러 작품이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너도 하늘말나리야>가 처음 나왔을 때는 너무 어렵다는 평가가 있었다고요.

저학년 동화를 쓰면 분명히 독자를 배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어요. 독해력이 아직 낮기 때문에 문장을 짧게 하고 플롯도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요. 묘사도 너무 많지 않아야 해요. 그렇게 쓰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독자를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작가 스스로 제약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심리든 스토리든 깊이 들어가 본 겁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썼으니까, 독서력이 아주 높은 소수의 독자를 생각하고 쓴거죠. 소수의 독자만 보더라도 마음껏 치밀하게 써보자 했어요. 정말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이게 무슨 동화냐, 소설이다, 어렵다. 이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엔 그 덕분에 롱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 독서력이 높아져서 요즘엔 초등학교 3~4학년도 읽는다고 하더군요.

 




Q 자녀가 성장하면서 소설의 방향과 성격이 달라지곤 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 등단했을 때는 미혼이었어요. 그때는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썼죠. 초등학교 저학년의마음을 잘 몰라서 고학년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썼어요. 그러다 아이를 낳고 비로소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시리즈가 나왔어요. 연령이 내려간 거예요. 제 이야기는 아이들과 같이 성장했어요.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썼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벼랑> <주머니 속의 고래>를 내놨죠. 다른 작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상에서 영감을 얻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웃음).


Q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세요?

지금은 다 커서 26살, 24살 아들 딸인데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이 강했어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는 아이들은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 애들은 왜 말을 안 들을까, 그런 생각보단 아이들 자체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작가로서도 지평이 넓어졌어요.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그들만의 언어나 행동에 대해 코치도 많이 받아요(웃음).


Q 어려서부터 작가로 이끈 토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희 할머니가 옛날 분이라 한글을 모르셨는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나중에 나이 드셔서는 제가 책을 읽어 드렸는데 그걸 제일 좋아하셨어요. 치매가 오셨을 때는 실제 겪으신 일과 당신이 하셨던 이야기를 헷갈려 하시는 거예요. 제 작품 중 <호랑이를 탄 할머니>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동화에요. 유년기를 할머니 댁에서 지냈는데 그땐 할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할 때마다 똑 같은 이야기도 달라지는 거예요. 그때 체득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걸. 아버지는 작가는 아니셨지만 한때 작가 지망생이셨거든요. 단칸방에 살 때도 창문만 빼고 벽을 다 채울 만큼 늘 주변에 책이 있었어요.


Q 30여 년간 동화, 청소년 작가로 활동하셨습니다. 일반 소설을 쓰는 것과는 다른 매력은.

일반 소설은 현실을 더 어둡고, 더 부정적으로 문제화 시켜서 작품을 쓴다면 아동, 청소년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요. 아직 살 날이 훨씬 많은 아이들에게 그런 걸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작가 스스로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각을 하게 돼요. 작가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또 하나는, 그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엔 캐릭터에 빙의해서 청소년, 아동으로 살거든요. 그게 굉장한 기쁨이고 재미에요. 다음에 어떤 작품을 써야지 할 때 두려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설렘을 주는 게 이런 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동문학가를 보면 나이보다 동안인 경우가 많아요.


Q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 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청춘기담>을 11월쯤 발표할 예정이에요. 다음 장편도 구상 중이에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자료조사도 할 게 많네요.


Q 꿈이 있다면.

작가는 정년퇴직이 없지만 마지막 작품까지 항상 성장하는 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70살이 돼서도 어린 독자들이 제 글을 읽고 친구처럼 여겨줬으면 좋겠네요(웃음).